'영화의 딴생각'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0/01/11 오랜만의 영화, 아바타. 그리고 전우치
  2. 2007/12/20 이명박 각하시대의 필관람 좀비 영화정리. (1)
  3. 2007/12/10 그래도 3천원씩은 꼭 주고 싶은 영화 은하해방젖선(은하해방전선) (1)
  4. 2007/09/06 최근에 본 몇가지 영화 까먹기 전에 정리.
  5. 2006/12/07 판의 미로 (현실이 항상 피해자인 이유) (2)
  6. 2006/08/29 괴물같은 세상, 괴물 (8)
  7. 2006/08/25 연애의 목적 (3)
  8. 2006/08/10 영화 괴물, 쇼비니즘과 징고이즘 사이에서 슬퍼진다. (6)
  9. 2006/05/06 The World's Fastest Indian(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10. 2006/03/23 ‘너나 잘하세요’의 친절한 금자를 사랑하는 이유
  11. 2006/03/20 브로크백마운틴, 결국은 환경이 사기 친 갈데없는 드라마 (2)
  12. 2005/11/25 오~ 강력3반. (5)
  13. 2005/07/12 [우주전쟁]이제야 현실을 만나는 스티븐 형에게 박수를!! (1)
  14. 2005/04/23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 홈피가 오픈 했군요.
  15. 2005/04/22 결국 고수는 정상에서 만나는구나. 나훈아, 전인권, 그리고 클린트 형아의 [밀리언달러베이비] (1)
  16. 2005/04/06 승자의 조금 비겁한 루저 달래기 (윔블던) (2)
  17. 2005/03/29 (제보부탁) 이 영화들을 찾아주세요. (1)
  18. 2005/01/24 벼멸구 같은 인생의 봄날, 쿵프허슬 (4)
  19. 2005/01/18 대신 싸줄 수 없는 똥, 내셔널 트래져 (4)
  20. 2004/12/21 (ㅠ,.ㅠ 지워져서 재포스팅)인크레더블, 좋지만 비아냥거리고 싶은
  21. 2004/12/02 [공고] 비영리 영화 웹진 0jin0.com을 소개합니다. (1)
  22. 2004/11/26 놓아라, 다 놓아라. 꽃피는 봄은 어차피 오지 않더냐? 『꽃피는 봄이 오면』
  23. 2004/11/25 씨발 햄버거가 무슨죄야! 자본이 죄지! 『슈퍼사이즈미』 (3)
  24. 2004/11/18 진부하되 웃기는데 성공한 개그의 제왕 [피구의 제왕](원제 : Dodgeball) (1)
  25. 2004/11/12 박민규식 후회의 역설. 나비효과, Director's Cut
  26. 2004/11/02 비포선라이즈, 그리고 비포선셋, 아직도 유효한 원나잇의 필독교과서 (4)
  27. 2004/11/01 불편한 과잉의 추억, 주홍글씨
  28. 2004/11/01 내 머리 속의 지우개 (3)
  29. 2004/10/21 너무나 분명한 치환의 고통 I'm Not Scared(Io Non Ho Paura 2003)
  30. 2004/10/19 뉴폴리스스토리를 보다 김형곤이 생각났다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 , 노자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말인데 짧은 수준으로 풀이해보면

"말하는 도는 도가 아니다" 뭐 이런 뜻이다.

전작보다 좋네 나쁘네 말들이 많아서 솔찮히 걱정했지만 최동훈 특유의 문법이 잘 살아있다. 좋다. CG도 그만하면 흡잡히거나 창피할 이유 없다. 빠른 호흡으로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이야기, 좋고 적당한 호흡과 대사 좋다. 유해진은 반발자국만 더 갔으면 넘버3의 송강호만큼 갔을텐데 좀 아쉽고, 아쉬워도 그만한 배우는 역시 없고,

최동훈은 도에 대해서 공부 많이 했나보다.

호접지몽부터 노자의 탈가식(?) 탈형식(?)(아무래도 탈형식이 맞겠지?) 아, 생각났다. 탈가치의식, 반형식 뭐 이런거에 대한 아주 상업적인 풀이도 좋고 캐릭터에 잘 녹아 났다. 류승완이가 도술의 개념을 생활의 달인 수준으로 이해했다면 최동훈은 거의 BBC 다큐 깊은 바다 수준으로 이해한 정도의 차이.

, , 三, 無가 전체 속에 녹아있고 허담의 마지막 페이크에는 호접지몽의 그것이 녹아있는 게 아주 짝짝 입에 달라붙더란 말씀.

최고는 역시, 넌 암컷 드립과 예수님의 피 개그.

말 바꿔서 아바타. 일산 CGV 아이맥스3D로 감상.

최동훈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서 모나미 그림물감과 아크릴 물감에 굳어버린 붓으로 포스터 그릴 때
카메론 형은 역시 돈질로 입 딱 벌어지는 혁명을 창조. 이건 뭐 말할 필요도 없는 터미네이터2 이후 최고 충격의 영상.

그러나 비유띠 버뜨 but

현실에 대한 철학적 깊이,
영화문법에 대한 현학스러움,
정치적인 올바름.

모두 최동훈 감독이 우월해 보임.

최동훈이 카메론에게 진 것은 단지 돈, 투자, 시장 뿐.

대한민국에 최동훈 같은 감독이 있어서 카메론 있는 미국이 안부러운 것임.

아, 자본력은 캐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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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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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결단에 따른 BBK특검 수용을 당선 확실시 뜨자마자 거부 요구하는 형준, 재섭 좀비에 대항하기 위한 필관람 영화.

2. 레지던트 이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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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의 위기에 처한 근혜공주가 필사적인 총선탈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봐야하는 요요비치 언니의 생존담.

3. 28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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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8주후 벌어지는 총선에 단 한명의 생존자도 없이 4분5열 사망이 예상되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당면한 사태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4. 28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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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인수위가 꾸려지고 본격적인 정권 인수작업이 벌어지는 시기인 28일 후 그나마 전현직 대통령 중 제일 사랑했던 노통령의 허탈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봐줘야 하는 영화

5. 새벽의 황당한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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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 강점기에 좀비와도 친구 먹을 수 있는 이 영화로 자꾸 위안해 보자. 좀비와도 친구 먹는데 뭐 어떻게 십라 될지도 모르잖는가?

흑,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우리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좀비가 세상을 지배한 시대에도 살아남았다"고 말해줄 겁니다.

60년전 이승만 정권 때 죽었어야 할 좀비들이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름 바꿔 살아온 30여년 입니다. 그들의 부활에 한 표 던진 우리나라를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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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Milky way liberation front의 직역은 은하해방‘젖’선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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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질르면 졸라 커짐


1. 꿈, 상실

대통령, 우주과학자, 육군대장 등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주입당해야 했던 국민학교 4학년의 나는 당시로서는 매우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5층짜리 건물을 사서 5층은 자택, 4, 3층은 독서실, 2층은 만화가게, 1층은 오락실, 지하는 분식집으로 임대하는 임대사업자는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룩하고 싶은 꿈이었다. 독서실에 다니는 학생들을 만화가게, 오락실, 분식집이 주 수입원으로 삼으면 절대 망할 수 없는 임대 이데아가 구축될 것으로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내 꿈은 비현실적인 꿈인 대통령 따위를 꿈꾸던 현실의 반작용이었고 그에 반해 임대업은 실존적인 레토릭을 구축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제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사실인지를 깨닫게 된 후 나타나는 상실감이었다. 소박한 꿈이 아니라 로또 정도는 당첨이 되어야(그것도 1위가 3명 이내) 이룰 수 있는 1/6,000,000의 꿈이었다.


2. 소통, 가역반응

화학에서 가역반응은 외부적 조건이 조작되었을 때 정반응과 역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연애역시 일종의 화학반응으로 일어나며 가역반응의 법칙이 적용된다. 암컷과 수컷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결합했다가 그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분리되며 대개의 외부적 요인은 소통과 환경에 기인한다.


우량 DNA를 쫒아 교미를 하는 “지적 생명체”와는 달리 인간은 유전적 진화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가령, 단순히 고기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단일개체의 동일한 DNA를 무차별 복사해 조류독감, 광우병 등으로 개체를 괴멸시키는가하면 유전자 변이를 통한 농산물의 과잉 복제로 다양한 해충 및 병원균을 양생한다. 유전적 진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화도 현저하게 떨어져서 어떤 나라는 기름공장 집안의 가세 확장을 위해 한 나라를 초토화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있고 또 어떤 나라는 열거하기 힘들만큼 온갖 부패를 뒤집어 쓴 대통령 후보가 단지 한 기업체의 사장으로서 건설업 수주 아도를 쳤다는 이유와 시장 재직시 국민의 의견수렴없이 수로를 만들고 버스로를 단일화해 수백억의 누적적자를 지금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4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만든 일등공신은 현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방해한 조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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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하해방젖선, 영재

영재의 꿈은 영화감독이 아니다.

영재의 꿈은 영화감독으로서 디렉터스체어에 앉아 부리는 똥기마이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지펠냉장고를 사는 이유는 보다 넓은 냉장창고 때문이 아니라 지펠냉장고를 삼으로써 고현정처럼 우아하게 살수 있다는 착각을 사는 것처럼 영재의 꿈은 현실의 소통과 괴리되었다.


자본이 소비를 강요하는 촉매는 이미지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게 하는 것. 쓸데없는 경쟁을 야기하는 것. 박민규식으로 말하면 프로를 강요하는 것이고 맑스 입을 빌리면 ‘어차피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자들에게는 불행만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요컨대 착각의 죄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현실과의 괴리감이다.


영재가 겪는 소통의 부재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영재가 닿고자 하는 이상은 자신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위의 권력자와 그 위의 권력자의 입맛대로 변질되고 포장된다. 그의 시나리오가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질 때, 창작물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을 쫒아다니던 배우에게서 조차 영재는 자신의 입을 빼앗기고 만다.


시나리오가 가차없이 변질될 때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영재가 집착하는 것은 결국 디렉터스체어 밖에 남지 않는다.


오롯이 남은 단 하나의 집착.


4. 멜로가 되고 싶은 코미디

결국 사랑은 코미디다.


이 간단한 명제를 되도 않는 무수한 영화에서 지랄을 해대며 숭고화 시켰고 감독은 이 뒤엉킨 타래의 오류를 직관적으로 꿰뚫고 풀어냈다.


엉킨 실 풀 생각 안하고 그냥 잘라버렸다. 얼마나 통쾌해?


그래서, 난 이영화에 3천원 더 주고 싶다. 썩 내키지 않지만 혀만 넣지 않는다면 뽀뽀라도 한번 받아줄만 하다. 이렇게 슬픈 이미지와 현실과의 괴리를 유쾌하게 풀어낼 감독, 얼마 없다. 별난 것 없는 2007년 한국 영화에게 건진 두 번째 영화로 은하해방전선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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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리포터와 불의잔
- 헤르미온느가 어디가 어때서? 배부른 포터쉐끼

2. 트랜스 포머
- 커머셜 필름의 효용을 보여주는 최접점.

3. 그놈 목소리
- 보다 잤다.

4. 남극일기
- 내츄럴시티의 재발견보다 흥분되는 쾌감, 이게 왜 구리다는거지?

5. 미녀는 괴로워
- 김아중이 이상하게 생긴건 아니네.

6. 일번가의 기적
- 하지원 복근만큼만 네러티브 관리가 되었다면...

7. 디워
- 이거 봐야 나도 주륜데...ㅠ,.ㅠ;;

8. 다이하드 4.0
- ㅅㅂㄻ 영화특급..

9. 타짜
- 영화계의 최훈이군화.

10. 극락도 살인사건
- 훗, 리얼라이프에는 황우석이 있는걸...

11. 300
- 천당도 줄서 가라면 안갈 판인데, 왕까지 복근있는 나라는...

에, 나머지는 기억 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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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판타지의 국가에 살고 있던 나에게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번씩 전국이 암흑이 되는 민방위날이 되면 동네 앞까지 돼지머리의 공비가 쳐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살짝 떨리기도 했고 새디즘으로 중무장한 선생들은 1.5cm의 머리길이를 강요하며 삼청교육대 원생 대하듯 애들을 쥐어 패기에 바빴다. 80년대 후반,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은 이미 폭력의 수위를 넘어섰고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얄팍한 구호는 폭력으로만 이루어졌다. 그것도 권력의 입장에서만...


폭력과 억압, 구호와 선동의 근대화 판타지에 몰입을 강요당해야 했던 우리는 굳이 신세계를 찾아 도피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신세계를 암만 그려봐야 우리 머릿속에는 고작 대머리 쿠데타나 빡통 암살밖에 떠오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대신 빡통의 요정과, 달짝한 씨바스리갈의 뒷이야기과 장*희씨의 도미 이유 등이 선데이서울스러운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판타지는 ‘황홀한 사춘기’가 열어주고 있었다.


도이시마 다께오.


주인공 마사오를 내세워 일본 전역의 여자를 별 어려움 없이 ‘따먹는’ 이 통속 소설은 전국의 중고등학교 남학생 토스테스테론 분비를 촉진시켰다. 친일파가 정권의 실세가 되고 정의에 폭력이 앞서며 폭력이 곧 ‘정의사회 구현’이 되는 이 비현실적인 세계에 아가씨, 아줌마, 심지어는 하숙집 아줌마 딸까지 범하는 마사오의 여성편력은 성을 통해 계급과 도덕의 벽을 부수는 판타지였다. 『구타하는 선생을 범하고, 집값으로 현실을 옥죄는 집주인을 마음으로 강간할 수 있었고, 계급과 차별을 벽을 부수고 재벌집 딸년을 범할수 있었다.』 라고 말하면 개뻥인거고 툭 까놓고 우리는 말초신경의 지배 하에서 말초신경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 할수 있는 것이 마스터베이션 외에는 없었다고 말해야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이야 택도 없는 이야기지만 유두하나 나오지 않는 ‘건강 다이제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자위할 수 있었던 시절. 500번은 더 돌려봐서 이제는 저게 사람인지 바야바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폐품수준의 포르노 테이프를 봐도 하루종일 흥분이 가시지 않던 시절에 소위 ‘음란서적’으로 통칭되는 성적 판타지 소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담보로 단백질과 테스토스테론을 앗아가는 사채업자였고 고리대금업자였다.


천박한 군사문화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고는 핏대선 노동문학과 일체의 정치색이 담길 수 없는 애매모호한 초현실주의(난 이문열이 대표하는 80년대 순수문학의 기저에는 초현실주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조롱조로...)문학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꿈을 먹어야 하는 시기에 말초신경을 담보로 뇌로 가야할 단백질을 엉뚱한데 쏟아버린 지금.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어가 도피했던 환상의 세계는 또 얼마나 부럽고 행복해 보였던가 말이다.


오필리어가 문학으로 찾으려던 판타지와 내가 80년대를 살아낸 ‘황홀한 사춘기’까라의 판타지는 도피라는 측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도피하고자 했다면 현실에서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았어야 한다. 이 영화가 그토록 슬펐던 건 바로 현실과 머리를 맞출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것이며 어디로 발버둥을 치던지 결국 부조리한 세계에 남겨진 비틀어진 닭대가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평일날 교통사고로 죽어야만 보상금 7억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한 한 쪼다같은 가장의 불편한 아침 출근길에는 항상 판의미로와 황홀한 사춘기의 판타지가 교통사고로 끝났으면 하는 소망과 맞물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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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다시, 서울의 봄은 올 것같지 않았다. 그해 여름 보라매 공원과 여의도는 80년 광주에서 찢겨나간 살점들과 부마항쟁의 비명과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머릿수 놀음으로 때아닌 홍역을 치러야 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베트남전에서나 볼법한 머리를 잃어버린 소년과 개처럼 끌려가는 형들과 신길6동 동사무소 아저씨들이 원정나온 모습을 차례로 봐야 했다.

아버지는 김영삼 유세 때 뿔피리까지 사가지고 회사가 아닌 여의도로 출근 하셨다.

1989년 전교조가 생기면서 고1의 눈이 바뀌기 시작했다. 폭력으로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세상에서 나는 힘이 없었다. 영웅본색에 열광했던 건 주윤발의 똥기마이 때문이 아니라 폭력적인 세상에 폭력으로 되갚는 인상적인 몇몇의 클리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90년 전태일을 알게 되었고 돌베게를 읽게 되었고 세계철학사니, 변증법적 유물론이니 하는 책들을 읽는 '척'했다. 사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공부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거 읽고 바퀴벌레 더듬이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의 지식을 통해 옆동네 여고 애들을 꼬실 생각이었다. 혁명은 피를 끓게하는 단어이며 피가 끓으면 몸도 끓는다는 것이 17살 후두엽에 각인된 공식이었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계획은 실현될 턱이 없었다. 좌절했다.

1991년 고3의 여름은 종로에서 지샜다. 전고협 깃발이 붙었고 학교에 담을 넘어가 피를 뿌렸다. 종로 2가, 형들과 함께 대오 앞으로 나가있는 나를 발견 했을 때, 그리고 누군가 전해준 화염병에 불이 붙었을 때 잠시 망설였다. 본건 있어서 돌리긴 했는데 생각보다 뜨거웠고 무엇보다... 던지기 전에 다시 빼앗겼다.

"이새끼 뭐야? 얘 여기 왜있어? 너 누구야??"

"... 씨발, 나도 여기 오고 싶어 왔나? 밀려 들어온거지"

지랄탄이 내 발 밑에 떨어졌고 나는 스테로이드 먹은 벤존슨보다 빨리 대오 밖으로 이탈했다.

경희대에서 출발한 대오는 종각까지 왔다.

미국대사관은 괴물이었다. 8,9겹으로 둘러쌓인 살아있는 갑옷에의해 뚤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한열이 생각났다. 박종철이 떠올랐다. 무학여고 정문 앞에서 이한열을 목놓아 외치던 백기완 선생의 성성한 백발과 쉰 목소리가 생각났다.

"씨빨, 학력고사는 치르고 죽어야지"

그리고 몇년 후

설마설마 했던 수령님이 가셨다. 역시 두꺼비 아들이 세습했다. "남조선이건 북조선이건 정치하는 새끼들은 전부 저래", "친일청산도 못하는데 그게 되겠어? 북한 욕할 거 없지"

김영삼 정부는 IMF라는 선물을 주셨다. 세상은 "영삼스럽게~"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강간도시로~"하는 말도 우스개소리로 돌기 시작했다. 영미식 시장경제인 금융실명제는 돈을 땅속에 박아두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무기명 채권으로 곰팡이나는 돈들을 끄집어냈다. 손호철식으로 말하면 한은 풀었는데... 앙금이 풀리지는 않았다. 김대중의 두 아들은 모두 비리에 엮였다. 김현철과 다를게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물에 그밥"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전라도 것들"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전라도 분이셨다. 어머니에게 왜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하냐고 하고 싶었지만 씨알 먹힐 소리가 아니었다.

노무현이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조선일보는 여러개 히트를 쳤다. "반미면 어떻냐?" "지금 막가자는 거지요?" 뇌가 없는 새끼들이 아니라면 인간들이 저러면 안되는 거였다.

인간쓰레기들...

뭘하든 앞뒤를 잘라서 말을 만들었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 안한다고 약올렸다. 전여옥은 참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그녀가 개그콘서트에 초대받지 못한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작통권을 넘겨받자는데 세금이야기나 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쟁이 나면 대통령보다 끗발이 높다. 자기 좆이 작다고 쌀집아저씨한테 마누라 맡기는 꼴이다. (이 표현은 모 회사 이사 진모씨의 표현을 빌렸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과 사건이 지나가면서 세상도 변했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여염집 가부장처럼 애도 낳고 대출도 갚고 빚도 지고 월급 받으며 살아내고 있다.

어제, 직장 상사와 술을 먹는데 나눔문화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박노해가 레바논 가는데 우리쪽 번역작가들 손이 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단다. 도움을 주고 싶다고... 7년간 침묵하는 그가 궁금해 거칠게 물어봤다.

"그양반 왜 변절했데요?"
"그거 답하기 전에 예전에 내가 본 만화 이야기 하나 하자. 그 조선일보에 신뽀리 그린 박광수 있잖아. 걔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데 머릿속에 안지워지게 그린 만화가 하나 있어. 고아원에 라면박스 쌓아놓은 대머리 사장 사진이 하나 있고 밑에 이런 대사가 있는거야... 난 졸부입니다...... 고아원에 라면이 아니라 걸레쪼가리 하나 가져다 주지 않은 새끼들이 어떻게 졸부를 욕해! 그래서 난 박노해 인정한다. 나눔문화 가서 내가 코딱지만한 도움이라도 되려는 거 그 졸부보다는 쪽팔리지 않을라고..."

일견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면 안된다. 선동하였고 외쳤고 그 사랑으로 커온 그다. 마누라가 정치판 모른다고 멍청하다고 "니가 말하면 뭐 알아 듣겠냐? 니랑 말 안해"하는 되먹지 못한 남편 꼴이다. 김문수, 이재오 씨발, 안착한 인간이 어딨어!!!!

홍탁을 거나하게 걸친 죄로 200번 좌석버스 안에서 졸았다.
머리 속에는 박노해와 1987년과 종로와 미국 대사관과 NL과 PD와 홍탁과 얼마전에 본 괴물이 뒤섞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망자긴 사망잔데 안죽은 현서의 영혼이 미선이 효순이와 같이 '그나물에 그밥' 국회의원들 어깨 위에서 계속 나를 야리고 있었고 이상황에서도 나는 잠이 왔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집과 독선을 내 딸년인줄 알고 붙잡고 뛰었으니 강두만 그런게 아니었다. 남일이가 돌리는 화염병에서 슬로우가 걸린거, 강두의 쇠창을 잡은 손에 베인 피. 1989년 종로에서의 일상이었다.

괴물은 허상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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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괴물

1

학습된 무기력

상대에게 부정적이고 고통을 주는 자극을 가하면서 그 자극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면 상대는 도망칠 수 있게 된 후에도 도망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다.


2.

“당신 부셔버릴거야”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도전한 대상은 한 남자의 불륜과 배신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되어온 남성중심의 제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남성중심의 이 공고한 관습과 삶은 부수어져야 하고 또 조금씩 부수어지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부수어지는 남근 이데올로기는 “연애의 목적”에서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3.

“안돼요, 안돼요, 안 돼요, 되요, 되요, 되요...”는 다분히 폭력적인 사고방식이다. 마찬가지로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는 폭력의 합리화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인용구이다. 기본적으로 의사에 반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싫다는 홍을 자빠뜨리며 유림은 “5초만 넣었다 빼겠다”고 말하지만 그 다급하고 애절한 외침 뒤에 숨어있는 폭력성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낸다.


4.

즐겁게 감상한 뒤에 남은 폭력의 잔재가 무섭다.

영화라 대충 해피엔딩이었지 현실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겪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사족 : 이 때 강혜정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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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괴물에 대한 이야기다.

구국의 사명으로 (뻘건)불빛만 보이면 불나방처럼 앞뒤 못재고 달려드는 우리의 꼴통친구 몇몇 찌라시들은 자신들이 목젖 내 놓으며 "이씨발, 반미영화잖아요" 하거나 "노통이 바로 괴물이잖아요" 하거나 "한국사회의 가부장이 흔들리는 세태를 괴물이 잘 표현했으니 노병도 좀 봐줘야 하는거 아니냐?(노병 누구? 분명히 5공 선생들이겠지)"한다.

(존경하는 지만오빠와 갑제누나의 시선이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3,000만 경제인구 중 1,000만명이 본다는 거 집단주의적인거다.
경제의 속성상 한번 커진 파이는 계속 커져야 하고 이를 지속시켜나가기 위해서 사용 될 애국, 민족, 염원, 통일 또 얼마나 우려 먹어야 할까?

보고 좋으면 권하되, 애국, 애족, 민족, 국민 이런거 좀 들먹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영화 이거 죄다 쇼비니즘을 통해 한몫 잡아야하는 얄팍한 장사치들의 선동나팔에 다름 아니다. 좋은건 좋은거고 좋으니까 좋은거다. 예전 딴지 총수가 했던 말인데 "우리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그랬다. 그 말 맞다.

잘 만든 영화, 광기로 똥칠 안했으면 좋겠다.

영화 가지고 우리 조중동 형아들 어떻게 울궈먹을까 고민 좀 그만하자.

근데 그건 그렇고 우리 배두나 배우님은 수원시청 '추루농'이 왜케 섹시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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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 들이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만이 매기를 세상에서 놓아줄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자신을 버릴 때라는 걸 그렇게 보여줬다. 스크랩은 꿈에 그리던 라스베가스로 가지 않았다. 갈 때와 가지 않을 때, 노인네들은 얼핏 노망처럼 보이는 결단에 삶의 깊이를 보여준다.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신파이지만, 정말 신파이지만 호크(토미 리 존스)가 달에 남아 흥얼거리던 노래(역시 기억 안난다만)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건 노인네들이 갖는 통찰의 깊이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은 비겁하다.
이제 알았단 말이다, 노인네들의 깊이를.
그러면 그럭저럭 만들어 줬어도 충분히 이해할 거 아니냔 말이다.

벌써 성급하게 2006년 최고의 영화로 주저없이 이 노인네 영화를 또 꼽아야 할 거 같은데 작년에 이어 이 노인네들의 득세는 언제까지여야 하냔 말이냐?

칠순에 보여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기적이었다.

내게 삶을 올바르게 보여준 할머니가 생각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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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의 친절한 금자를 사랑하는 이유


1.

게오르규가 생각났다.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공기말이오. 인간은 이젠 더 이상 견디어 낼 수 없을 것 같소. 관리, 군대, 정부, 국가조직, 행정 등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인간을 질식시키고 있소. 현사회는 기계와 인종 노예에 봉사하고 있거든. 그것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야. 한데 인간은 모두 질식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아직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지. 인간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고 있소.“


한나라당이 아직도 제1야당인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라고 믿는 사람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2.

탈리오법칙의 쾌감은 뿌린만큼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칙의 종결 속에서 자신이 승리자로 남는다는데 있다.


최연희, 이명박씨가 아직도 굳건히 버티는 건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버티면 살아남는다는 진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900년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탈리오법칙이 적용된 사례는 없다.


3.

금자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법의 테두리에서 상처 받았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정의를 말한다. 세상이 바로 있지 않은데 법이 바로 설 수 없는 법이다. 장황한 영화의 논의는 내 앞에 조낸 많았으므로 하지 않겠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금자만한 아가씨가 하나 있었다면

세치혀로 그렇게 잘나던 구캐으원 형님들 혓바닥이 어디 아직도 남아 있으랴?






4.

3줄 요약

1. 친절한 금자씨 봤는데

2. 최연희 오버랩 되면서

3. 금자가 실존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

1줄 요약

1. 금자야, 어떻게 국회로는 생각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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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마운틴, 결국은 환경이 사기 친 갈데없는 드라마


(1)

딴지일보 전 영화 팀장이었던 나모씨는 중학교 시절 친구와의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 꼬추를 랩으로 감싼 채 한 번씩 빨아주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고백한 적이 있다. 내 여동생의 대학교 동창이었던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 자기를 사모하던 후배가 꽃다발을 전해주기 위해 달려오다 차에 치어 숨졌다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지어내 얄팍한 대학교 1학년 여동생의 감수성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 구라의 충격으로 내 여동생은 별놈의 신파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2)

결혼은 결국 자잘한 사랑의 감정을 되새김질해서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테제와 비열한 자본주의 종속이라는 안티테제의 싸움 속에서 우정을 재발견해 나가는 작업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결혼은 인내심이 빚어낸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긴 우정이 애정 되는 거고 오빠가 아빠 되는 거고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빼면 님이 되는 거다.


(3)

20년 만에 니퍼를 잡고 반다이제 MG등급 건담을 만드는 걸 취미로 삼은 지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무슨 이유로 프라모델의 취미를 버렸던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못 찾았다. 4만 원짜리 프라모델 하나도 일주일에 3시간씩 한 달이면 정도면 만들 수 있으니 이거 꽤 돈도 절약되고, 술도 줄이며, 집중도 할 수 있는 취미인데다가 워낙 날아다니는 성격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니 일석오조쯤 되어 보인다. 20년 잊고 지내던 취미를 사랑하니 옛 생각이 아주 새록거린다.


(4)

50여년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상봉은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다. 옆동네 살면서도 마주치지 못했던 혈육과 택시로 2만원거리에 있으면서도 가보지 못하는 고향은 어느새 “넓은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잊지 못할 이발소 유화 속의 그 그림처럼 박제가 되었다. KBS 이산가족 상봉 생방송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혈육의 상봉을 가슴 뜨겁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만난 지 두 달 만에 2천만 원을 빌려가서 도망쳤다는 둥, 사소한 싸움에 원수가 되었다는 둥, 차라리 안 볼걸 괜히 만났다는 둥 뒷맛 더러운 소직도 적잖이 들어야 했다. 추억하는 것만큼 현실이 못따라온 결과다.


(5)

브로크백마운틴은 그리움의 영화다. 몇 주 동안의 사랑과 20여 년간의 이별의 감정이 덕지덕지 발려있는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되새기게 한다. 저 사랑이 과연 가정을 파괴할 만큼 강렬한 것이 아니라는 게 그 하나고, 환경이 만들어 놓은 불충분조건에서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나가는 꼴이 그 하나고, 3~40여 년 전 이반에 대한 냉담한 시선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이라는 게 그 하나다.


추억은 좆나게 얄팍하다. 끝을 보지 못한 사건에 대한 욕망은 집요하다. 멀쩡한 가정이 있고 자신에게 헌신해주는 마누라가 있으면서도 친구의 의리(혹은 사업상의 접대)에 묶여 매일 술처먹고 들어와야 하는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애니스를 욕할 자격 없다. 가정을 속이고 부적절한 관계를 강요하는 기성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솔직히 사회(혹은 친구)와 간통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현실에서 책임져야하는 중압감에서 도망쳐 각종의 핑계를 안주처럼 양산해내는 상식적이지 못한 변명의 재생산 속에서 나는 내가 책임져야하는 대상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꼬추를 랩으로 감싸 빨아주던 추억은 시간이 지났으므로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20년이 지났기에 다시 만드는 프라모델은 과거의 추억으로 몰입하는 매개로서 또 설레는 것이다. 아직 상봉하지 못한 실향민들은 아직도 바람이 있기에 더욱 애타고 애잔해지고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이다. 삶은 혹은 결혼은 생활에 묻혀 비루하고 더럽혀지고 부담스럽고 귀찮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정말 사랑해야 할 것은 눈앞에 있다. 죽은 놈 고추 만져봐야 발기할 리 없고 발기되었을 때는 자잘한 감성만 남아 바삭거리는 눈물 흘릴 뿐이다.


이안 감독이 무서웠던 지점이 여기에 있었다.

쓸데없는 신파 버리고 애니스와 잭의 마스터베이션을 걷고 나니 내 지저분한 현실이 다가왔다.

내 집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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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껐습니다.

비천무, 클레멘타인, 7인의 새벽, 네발가락, 도마 안중근을 충분히 위협할만한 역작입니다.

사람이 참 비루하다 싶은게 저 애물단지를 어떻게 도로 반납할까하는 고민이 먼저 드는 겁니다.

OCN CSI 3시즌 놓친게 조낸 아쉽습니다.

제 영화관람 이력에 미하일 바리시니초프(?)의 '지젤' 이후 두번째로 관람중지된 영화에 오르는 영광을 강력3반이 차지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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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현실을 만나는 스티븐 형에게 박수를!!

기억이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는데 ‘1’자를 날카롭게 간 샤프심으로 ‘7’자로 고쳤던 것만은 확실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료 통지서를 새벽 5시 30분에 엄마의 눈앞에 디밀었던 건 분명히 잠결에 별 생각 없이 안경도 끼지 않고 그냥 주시리라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엄마의 “양현아, 지우개 가져와봐”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한마디는 재앙이었다.

아노미, 인샬라,

알고도 모른척하는 사람은 무섭다.
그게 사람이 아닐 땐 더욱 그렇다.

정체뿐만 아니라 그 근원마저 불확실한 다른 생명체가 지구를 덮치는 우주전쟁은 그 제목의 진부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 제목 따위야 후지면 어떠냐? 스티븐 형아에, 톰 형아에, 10세전후 최고미녀 다코다양까지 올여름 최고의 진용을 갖추지 않았더냔 말이다. 군발이 싸움은 3단 먹고 간다고(군복 1단, 전투화 1단, 깡다구 1단) 셋의 진용만으로도 개봉일 비슷한 타 영화사에게는 그야말로 ‘트라이포드’같은 놈들인 것을...

“꿈과 용기와 희망을”이라는 ‘5共’ 풍의 1980년대적 카피의 우리나라 포스터와는 상관없이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힘이 넘쳤다. 녹조낀 서해안 바닷가에 폐타이어 끼고 놀던 우리가 플로리다 광활한 푸른 해변에 15미터짜리 죠스의 꿈이 있을리 없었고 국민소득 3만불짜리 미국 중산층 가정사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의 스펙타클 모험 이야기가 우리에게 줄 용기는 없었다. 뿐이랴? 수 천번을 침략당하고도 “그래도 살아는 있었네”라는 자조적인 국사교과서 멘트를 끈질긴 민족의 저력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에게 당당히 문화침략자로서 영웅시되는 헤리슨 형이 어떤 희망을 줄 지 알지 못했다. “꿈과 용기와 희망을”은 미국시민권자이며 중산층 정도에 살며 최소한 백인쯤은 되어줘야 가능한 케치프레이즈였지 체류탄을 머리에 맞고 국가 기관 지하에서 탁치니 억하고 죽어나가는 군부독재하의 암울한 우리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그저 두 시간짜리 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필버그는 영화를 잘 만들고서도 권력의 소외자들에게는 뻥쟁이, 뽕쟁이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는가?

‘우주전쟁’은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솔직해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고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며 실제로 정의는 대단치 않고 살거나 죽는 건 가오다시 잡을 틈이 없다는 세상의 아주 단순한 이야기들을 블록버스터라는 공룡의 아가리에 집어 넣는 담대함은 역시 스티븐 형은 대가다란 생각이 든다.

아미스타드에서부터 변화를 꾀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을 통해서 또 한번 자신의 나와바리를 넘겨 버렸다. 난 아직도 밤 10시 미팅 시간 잡아놓고 2시간 뒤에 술이 떡이 되어서 나타난 00의원 출마 예정자의 홍보성 광고 제안서 단가로 고민하는 중이다. 그러나 ‘우주전쟁’에서 보여준 스티븐 형아의 화법대로라면 난 아직 살만하다. 난 비루하고 비겁하고 비리비리한 소시민이지만 쳇, 수 억년 벼르고 벼르다가도 어이없이 당하는 바보들도 있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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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가진 '관'이 횡포를 부리면 어떻게 되는가는
부천영화제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 부산영화제, 광주영화제, 전주영화제, 부천영화제에 꼬박꼬박 압박(Press)카드를 만들어 놓고는 단 한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한을 리얼판타스틱영화제에서만큼은 좀 풀어볼랍니다.

누질르면 커보입니다.

더군다나 특별전 리스트는 콧구멍이 벌렁거릴 정도로 앗쌀 합니다.
오오~ 솔라리스 아닙니까? 이름만 들어도 졸아버리는 따르꼽스끼 대형의 솔라리스를 필름으로 보면서 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콧구멍은 아끼지 않고 고추냉이 푼 물냉면 한사발 들이킨 듯 발랑거립니다. 거기에다가 헉, 고요한 행성에, 성운 속에서, 시험 비행사 퍼크스라니....

보도 듣도 못한 제목입니다. ㅡ,.ㅡ;;;
(사실 저 그 유명한 따르꼽 대형의 다른 작품 '희생'도 못봤습니다. 줄곧 잤거든요)

아무튼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의 건승과 성공을 기원 합니다.

리얼판타스틱 영화제 배너가 나오는 데로 좀 달아봐야 겠네요. 어떻게 다는지 모르는게 문젠데, 뭐 대숩니까? 리얼판타스틱 영화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리얼판타스틱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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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 후회하는 이유는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미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혹은 ‘다른 선택을 통해 더욱 나에게 이익이 남지 않았을까?’하는 미련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고집을 낳고 고집은 수많은 똥지뢰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1/8,000,000의 당첨확률을 가진 로또를 되거나 혹은 안되거나 하는 1/2확률게임이라는 착각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로또는 안사는 게 이기는 것이다. 안삼으로써 우린 로또를 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수는 미련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완성된다.


내 상식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트롯트 지존은 나훈아다. 아니 이정도 표현 어설프다. 대한민국 음악사에 그만큼의 무대 장악력을 가진 사람 없다. 세븐이 지 아무리 날라 옆으로 돌아차며 가랑이 사이로 7자를 만들어도, 서태지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흔들며 울트라 방성대곡을 해도, 나훈아의 꺾고 넘어가다 슬쩍 시선을 빼는 뒷맛의 카리스마를 따라갈 수 없다. 시선을 빼 버리는 것이 바로 놓아 버리는 것이며 놓아 버리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걸 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놓아버릴 때를 아는 타이밍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은 우락부락하고 거친듯한 인상의 나훈아를 대한민국 정상에 40년간 붙잡아 놓은 원동력이다. 절제가 폭발보다 무서운 것이며 시선에 남는 것보다 시선에서 빠지는 것이 기억되는 것이며 결국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모순된 진실은 나훈아 40년 정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전인권은 다른 의미에서 놔버릴 줄 아는 고수다. 그는 말함으로써 자신을 감싸주고 권좌를 보전할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을 놓아버렸다. 어눌하게 말하고 툭툭 내어 던짐으로써 가식이 주는 달콤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향취(여성지 버전)’, ‘락쿼는 오이세개로 살아요(문희준 버전)’, ‘세계가 인정해야하는 대한민국 음악사의 대부(스포찌라시 버전)’등의 비루한 찬사를 내 던지고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 타이틀에서 이미 안 싸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놓아버림으로써 [밀리언달러베이비]는 승리한 영화가 되었다. 프랭키는 결국 지는 게 이기는 사람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는 패배자처럼 나오고 분명한 살인자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승자다. 매기는 결국 마지막 라운드의 패자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면에서 분명한 승자다. 아이언은 또 어떤가? 패자가 승리하는 인도의 빛이 됨으로써 그 역시 승자의 반열에 올려야 할 것이다. 매기의 경기장에 뒤편에서 외치는 프랭키의 목소리는 칠순의 경계에서 도전해야하는 삶의 고단함이다. 그건 칠순의 감독만이 할 수 있는 통찰이고 칠순이 되어서도 고수의 자리에 있는 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결과이다. 요컨대 칠순의 감독이 만든 칠순 정도의 내공은 되어야 만들 수 있는 진짜 이기는 것에 관한 영화가 바로 [밀리언달러베이비]이다.

노련한 칠순의 감독은 매기의 성공기를 놓아버리고 프랭키의 해피엔딩을 놓아버리며 아이언의 라스베가스 행을 놓아버리고 처절한 링 위의 혈투도 놓아버리고 감정의 자잘한 질곡만 이끌고 런닝타임을 이끌어간다. 버린다는 것은 어렵다. 우린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가 자동차가 터지고, 악이 응징되며, 주인공이 승리하거나 승리의 순간에서 안타깝게 죽어버리는데서 나온다고 철썩 같이 믿지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도 나온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버리는 건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럽고 무엇보다 미련이 남는다.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사탕이 결국 이빨을 썩게 만들 거라는 건 사탕을 먹는 순간 사라지는 고민일 뿐이다. 우리는 실제로 수많은 사탕을 입에 물고 살지 않는가 말이다. [밀리언달러베이비]는 복잡한 네러티브도 없고 얽히고 설킨 감정의 또아리도 없고 끔찍한 음모나 배신도 없다. 그럼에도 속 깊이 울렁이는 여운이 남는 것은 마르고 닳도록 불법이 설파한 ‘놓으면 다 내 것이 된다’는 진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콘테이너 박스에 빨간 글씨로 써 놓은 해병대 전우회 스트커 한토막처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일이기도 하다.

난 2005년도에 봤기 때문에 2005년도 상반기 최고의 영화로 [밀리언달러베이비]를 이야기 하겠다. 고수는 정상에서 만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발견한 것도 그렇지만 칠순의 감독이 보여준 버림의 미덕에 감사하는 뜻이기도 하다.

사족 : 이 포스트의 배경음악으로 나훈아의 ‘내삶을 눈물로 채워도’ 전인권은 ‘걱정말아요 그대’를 붙이고 싶으나 ‘족’같은 저작권법 때문에 가사만 따다 붙인다. 인생 뭐 있냐? 그냥 붙인다. 잡아가라 그래!


가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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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은, 그렇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젊음은 냉혹하고 대가리는 아직 여물기 전이다. 고등학생들이야 눈치껏 담배도 피고 옆학교 누구랑 응응응 했더라는 무용담이 한껏 부풀려져 돌아다니기도 하고 형 학생증으로 술집도 가는 호방함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중학생에게 그런 일탈이야 그리 쉽겠느냐 말이다. 더군다나 중학교는 승자와 패자의 경험을 처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집안 사정 때문에, 성적 때문에, 혹은 어린 나이의 조숙함 때문에 진학의 고민을 최초로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뿔싸, 1등과 60등의 결과가 바로 여기서부터 갈리는구나. 성적이 인생을 가름하는 첫 번째의 도전인 이 시기에 말 그대로의 등수는 얼마나 사람을 민감하게 만들었던가? 모의고사 200점 만점에서 150점 커트라인의 전후를 왔다갔다했던 수많은 중간자들의 후달림은 또 얼마나 절절했던가 말이다.

우리반 왕따(당시엔 그런 말이 없었다만) 기석(물론 가명)이는 반등수 7등을 차지했다고 성적표를 받은 그날 자리에 엎드려 성적표를 찢으며 울었다. 기석이 뒤에 주루룩 줄을 서야 하는 53명의 우리들이 갖는 울분은 졸업식의 그날까지 기석이를 놀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난 어느날 뜬금없는 측은지심에 “넌 친구도 없는데 도대체 학교 끝나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족회의 하고 놀아”를 들음으로서 기석이의 왕따를 공고히 한 죄의식을 아직도 갖고 있다.



윔블던은 반에서 7등한 기석이의 눈물겨운 좌절극복기에 다름 아니다. 반에서 7등을 한 루저의 아픔이야 영화의 현혹에 감전된 알량한 감수성 건들이기 좋다. 그건 마약이니까. 얼마나 달콤하더냔 말이다. 샤라포바 보다도 이쁜 테니스계의 요정 브래드버리를 꼬시는데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치고받는 설정도 없다. 오이냉국에 밑간안한 그 니맛도 내맛도 아닌거 그렇다고 하자. 엥간한 있는 집에 살면서 작업용으로 훌륭한 컨버터블에 안정된 직장까지 보장된 그런 피터 콜트의 외면은 솔직히 그럴듯함이 없다. 일전에 영진공에 짱가님이 기고한 [익스트림 OPS]가 재미없는 이유와도 같다. 영화에서 그럴듯함은 실제와는 엄연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참조 : 이곳을 누지르시라)

그럼으로써 영화는 오이냉국에 물말아 놓은 결과가 되어버렸으며 우리의 예지력이 초능력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한껏 고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의 미인상과는 조금 이질적인 커스틴 던스트를 졸라 좋아하거나 폴 베타니의 매력에 빠져있는 여자들이라면 그럭저럭 좋아 하겠다만 워킹 타이틀의 전작에 광분했던 (어바웃 어 보이, 러브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파고, 오오~ 그리고 그리도 감동적이었던 엔딩을 만들어낸 Shaun of the dead여!!) 사람들이라면 이 알량한 로맨틱 코미디의 두께에 피식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감수성에 워킹타이틀만한 레이블이 어디 있겠냐마는 루저를 가장한 거의 성공한 위너를 그린 이번 작품은 좀 비겁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겁한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난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비겁했다고 말했을 뿐이지. 그나저나 기석이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설마 나보다 이쁜 여자를?

뱀다리 : 어차피 인생은 불공평 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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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윔블던
어제 영진공 회의중 술먹다 생각난 영화들입니다. 각종 영화관련 사이트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더군요. 혹시 제가 열거하는 이 영화를 알고 계시거나 소장하고 계신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전부 방화 되겠습니다.


후사야, 우리가 늘 하던데로 소주 한잔 되겠습니다.

술 못하시는 분은 흠.....제시하세요.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면 감내합니다. ㅡ,.ㅡ;;;; 오알티....

1. 거미줄
내용 : 홍콩에 급파된 한국 첩보원 00은 적에게 쫒기던 도중 태국 공주의 방에 잠입하게 되는데..... 태국 공주는 밑도 끝도 없는 충격적인 대사 "전 태국의 공주예요. 당신을 따라 가겠어요"라고 말하며 내가 보기엔 눈씻고 봐도 이태원 같은 거리를 홍콩이라고 박박 우기며 로드무비의 진수를 보여준다. (홍콩에 금성대리점과 백설표 굴뚝이 있는건 그 때 처음 알았다.)
목격 : 1991년 MBC 특선방화(토요일 오후 1시)

2. 여걸흑나비
내용 :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여걸흑나비는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데..... 일본 대좌쯤 되는 대장녀석이 여걸 흑나비의 컬러 사진을 부하에게 내던지며 독립운동중인 흑나비를 잡아오라고 하는 장면은 '백투더뷰쳐'의 과거로 돌아가는 플롯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사진에서 여걸 흑나비는 중국 전통복장의 요염하고 풍만한 자태로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자금이 매우 풍족하며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듯 싶다.)
목격 : 년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도 역시 MBC 방화

3. 제목모름
내용 : 신성일이 빨간 외제 스포츠카를 타는 바람둥이 첩보원 비스무리하게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며 이 빨간색 스포츠카가 말을 한다. 전격Z작전이 이영화를 베낀 것일수도.....
목격 : 토요명화였던가??

아....좀 나와 같이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분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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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비루한 기억들이 고개를 쳐드는 날이 있다. 내친구 준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생일주에 겨워 성동구민회관 앞마당에서 의경이 지나가는 것조차 무시하며 똥을 쌌던 1992년의 가을이 그러한 기억이고 우리 아버지는 4번째 부도를 통해 전면적인 사회활동 유보라는 가족들의 강압적 요구를 수용해야 했던 1985년의 봄이 그러한 기억이며 나는 1988년 가을의 도색 만화를 그리다 담임선생님께 걸려서 교무실 복도에 나의 그림과 같이 네시간 동안 벌서야 했던(내 중학교는 남녀병학이었다) 아픈 기억이 그것이다.


주성치가 진짜 웃긴 이유는 그 황망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황망한 상상력으로 친다면 저 1984년 작 “이영하의 투명인간”을 필두로 예전에 Dj.han님이 고발하신 “북두신권” 한국판을 비롯, 에~ 거슬러 올라가자면 태국공주와 한국 첩보원의 홍콩을 가장한 이태원 첩보스릴러 “거미줄”(이 작품은 네이버 영화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의 신산한 감정을 우려내는 황망함을 따라갈 수 없다. 일견 황망한 상상력으로 보이는 주성치‘식’ 표현 속에는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비루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차 있던가.

주성치를 찬양하는 개그의 접점에는 페이소스 가득한 루저의 비애가 가득하다. 그의 개그는 승자의 노래가 아니다. 오줌싸개완자의 넘치는 탄성만큼이나 오버된 그의 연기는 철저히 못난 놈의 자괴감에서 비롯되는 알량한 소시민의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하루를 연명하기도 힘든 넝마주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명함이 그 자존심의 본질이고 학교를 잡입해 들어간 경찰이 교과 학습 자체를 외면함으로서 “나는 경찰이니까요”를 말없이 웅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조금만 솔직해지고 조금만 비겁해지고 조금만 타협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비겁하게 합리화 시켜나가는 기성세대의 자화상은 실상 한꺼번에 비겁해지는 주성치와 무엇이 다를까?

여자를 꼬시기 위해 매달 구입했던 [최신 힛송 모음]이나 그 뒤에 달라 붙은 펜팔 주소록을 뒤적거리던 우리들이나 여래신장을 통해 세상의 구해보려던 ‘싱’이나 한치 다른 점이 무엇일까?

여래신장은 분명히 [최신 힛송 모음]에 나오는 비틀즈의 Hey Jude를 과감히 “여보게 주드”로 해석해내는 절륜 만큼이나 싱에게 한껏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고 우리가 처음보는 여자 앞에서 “헤이주드~ 이건 해석하면 여보게 주드~ 이렇게 해석될 수 있어”라고 심지다방 미스김 야쿠르트 시켜주며 똥끼마이 잡는 것처럼 ‘싱’은 놀림 받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심지다방 미스김의 경탄어린 눈빛세례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런 똥끼마이를 동경하며 살고 있고 그 똥끼마이의 저급함은 오봉문화 가득한 우리 사회의 문화의식, 성의식, 사회의식 속에서 애어른 할 것 없이 성업 중이다.

보면서 쪽팔려지는데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오는 건 주성치영화의 핵심이고 오늘 “쿵푸 허슬”에서 보여주는 주성치의 힘은 그런 면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뒤돌아보면 벼멸구같은 비루한 인생에도 봄날이 올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웃음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별 다섯 개를 주어야 하는 평이 있다면 난 꼭 여섯 개를 넣어달라고 하고 싶은 영화다.

PS. 이거 말하면 스포일러 일지 모르겠지만 쿵프허슬 최고의 장면은 주성치 어깨에 박힌 백미러였다. 이 것 때문에 거의 10분간 웃느라 영화를 못봤다. 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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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싸줄 수 없는 똥, 내셔널 트래져

1987년도 가을은,
고추가 거뭇 거리기 시작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카데미 과학사에서 나온 bb탄(콜트 45구경)이 모든 장난의 대세였으며 육사의 대권은 영원할 것만 같았고 폐품을 수집해 학생 의료보험비를 충당하는 웃지못할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시행되는 시기였다.

“옆 학교 애들은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가을볕에 뒹구느라 두 명이 뒈졌다더라“라는 휑휑한 소문이 도는 해였으며 무엇보다 잊지 못할 괴소문은 볼펜을 양손에 끼고 분신사바를 외우면 머리위로 귀신이 나온다는 것, 또 새벽에 혼자서 분신사바를 하면 천원짜리 도산서원 뒤뜰에서 머슴이 하나 튀어나온다는 지금에 와서는 기도안찰 소문이 왕왕 열네살 머릿속을 뒤엉클어 놓던 시절이었다.

아주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이순신 동상에 구멍에서는 12시만 되면 검은 손이 튀어 나온다거나 초등학교 부지가 원래 공동묘지였다는 전설에 대해서는 그저 애새끼들의 왕구라라고 콧방귀도 안 뀌는 놈들이 천 원짜리 속 도산서원 머슴이(한국에만 수천만장 있을) 나올 거라고 믿었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머슴을 봤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는 놈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열네 살이었고 그 정도 소영웅주위에 입각한 구라에도 우린 감탄하거나 의심하거나에 상관없이 그 무용담을 경청했다.

나중에 와서야 그게 아주 저급한 음모론의 태동이며 나이를 먹건 안먹건 그런 음모론은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은 음모에 다름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하다못해 반에서 학습부장쯤 되는 지위에 보장되는 애들의 8할은 대통령(혹은 육군대장이라고도 하는데 이건 대통령에 다름 아닌 꿈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에는... 간혹 대가리가 일찍 굵은 애들 중에는 보안사 사령관이라고 정확하게 직책까지 밝히는 놈도 있었다.)이 꿈인 것처럼 세상은 헤게모니를 쟁취하려는 인간과 지켜내려는 인간들의 크고작은 싸움판이었고 헤게모니로의 도전과 응전에는 반드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음모의 힘은 그럴듯함이었고 음모로 부화뇌동하는 자들에게 그럴듯함은 신념과 용기를 주입하는 몰핀이었다.

음모와 비밀을 밝혀나가는 스펙터클은 스티븐(스필버그)만한 놈이 없었다. 스티븐의 ET야 B짜 소니 베타비디오로 친구놈 주산학원 따라가서 본것이 전부였으니 밤씬은 통째로 들어내서 안본거나 다름없었지만 그 뒤로 이어진 구니스, 그렘린, 백투더퓨처에 나는 그의 영화를 전체를 통키(업자용어 : 일부 용역이 아닌 전체를 수주함)로 신뢰하고야 만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압권이었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실제와 신화가 난교하듯 섥혀있는 이야기 구조는 역사, 세계사를 쪼다 수준으로 풀어내는 나에게도 기원전부터 시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지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다.

학습부장이었던 용식이의 꿈이 대통령에서, 로또에서, 지금하는 배달 피자집 매상이나 좀 올랐으면 하는 바램으로 바뀌어 간 것처럼 내 상상력도 천원에서 나오는 도산서원의 머슴존재가 가능할까에서 어제 술자리에서 내가 필림 끊긴게 언제부터였나 수준으로 바뀌어 갔다.

21세기식 “인디애나 존스”라고 헤드카피 날리던 내셔널 트래저는 그런 이유에서 나에겐 의미 없는 카피이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이미 타워링을 뛰어 넘는 재탕작으로 설날과 추석 연휴에 눈에 못이 박히도록 봐온 안봐도 비디오가 되어 버린지 오래. 뿐이랴? 제2의 마돈나로 자칭하던 김완선이 마돈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제2의 김완선으로 성공하리라던 오룡비무방이 쫄딱 망한 것처럼 성공한 케이스에 뭍혀가려는 조잡한 세몰이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보지마세요”라고 외친 꼴이 아닌가?

그래도 꾸역꾸역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달랑 하나였으니 그 오롯하게 기억나는 도산서원으로의 재귀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거창스러웠다. 프리메이슨단의 기사가 된 벤자민이 얼씨구, 독립선언서 뒤에 무슨 암호가 적혀있음을 알게되는데 것 참, 국립박물관 터는 것이야 누워서 떡먹기 보다 30원어치 만큼 어려운 수준인데다가 그럼 그렇지, 아버지가 숀 코널리에서 존 보이트로 바뀐 것을 빼면 설정 하나하나가 어찌 콧터럭 만큼 다르지도 않을까하는 황망함에 니미, 악당이 애비를 인질로 보물의 목전까지 도달하는 플롯마저 젠장,

영화가 꼭 없던 것을 만들어야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다만 어정쩡한 국내 배급사의 세미트롯식 헤드카피에 헤드카피 수준에서 딱 반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플롯에 200년짜리 역사의 빈약함을 유럽의 석공조직까지 겉다리 식으로 들먹이며 소영웅주의하에 끌어들이는 개그까지 어디하나 웃.기.지.않.는.곳.이.없.다.

결국 영화 내셔널 트래저는 인디애나존스가 대신 싸주길 바랬거나 빈약한 역사를 프리메이슨이란 야사까지 동원해 싸주길 바랬지만 지 똥은 결국 지가 싸야 된다라는 만고의 진리만 확인시켜 준 채, 싸다 주저앉은 꼴이 되어버렸지 뭔가?


3줄요약
인디애나존스는 재미있었다.
근데 우린 너무 대가리가 굵었지.
똥은 지가 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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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 옹께옵서 그리 저항하려 했던 매엔!

우린 미디어에 비해서 늘 부질 없는 존재다.
우리가 미디어에 등장할 때는 늘 '국도를 달리던 버스와 24톤 트럭이 충돌해 사망18명 부상 27명'에 일부가 될 때, 혹 운이 좋으면 능력없는 애비의 비애가 절절한 '아빠의 도전' 따위에서 말도 안되는 곤봉 돌리기 단 1회로 '그나마 능력있는 애비'가 되거나 아니면 '그것조차 못하는 무능력한 아빠'에 줄타기 때. 혹 운이 더 좋다면 연말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돈 만원 자선냄비에 넣을 때 느닷없는 카메라에 선건 맞으며 별 생각도 해본적 없는 '불우청소년의 미래' 따위를 읊어줄 때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래, 도대체 얼마를 벌어오라는 거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가뜩이나 연말 경기 심란한데 어따대고 약올려?

어리광도, 격려도 삐딱하게 볼 수 밖에 없는 처연한 세상에 부딪혀 살아가는 샐러리맨들, 자영업자들의 비애가 나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초능력자 집안의 알콩달콩한 살이를 마음편하게 못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제발 2등만 하라는 아빠, 미모에 아량에 아이들 뒷치락거리용으로 고무처럼 온몸이 늘어나는 초능력을 가사용으로 소모하는 엄마, 주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 90년대의 맨들이 자아에 대한 고독으로 몸부림을 잠시 쳐 주신 뒤 역시 '맨'은 맨이야를 외치며 치기어린 자기번민의 시간을 성장통처럼 가져온 맨님의 변화는 이제 인크레더블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재미있다. 졸라 웃긴다. 재치 있고 오, 그 놀라운 3D능력. 내가 3D 오퍼레이터가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거 뭐냐? 폴리곤이라고 하나? 놀랍도다.

근디 말이다. 저 모든게 나한테는 마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노래부르며 비아냥 대는 처자식마냥 얄미워 보이냔 말이다. 그보다 차라리 잭블랙이 아이들에게 '니들은 맨을 쳐부셔야!"라고 외치던 자본주의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절대 해서 안될 말들이 절절히 들리냔 말이다. 왜, 루저의 감정이 나에게 가슴 절절해 지는 거냔 말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하며 노가다 잡부에서 사시에 합격한 누구를 저주했던 고등학생들이나
'초능력이 미워요'를 남발하던 (배트,스파이더)맨들을 아니꼽게 보는 나나
'인크레더블'의 초능력 가족의 푸념에 절망해야 하는 이 땅의 샐러리맨들이나

어디 도.망.칠.데.가.없.다.

부대끼는 건 지금도 벅차고 낙타의 등이 부러지는 건 언제나 마지막 한 짐 때문이다.

이노래가 이럴 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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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영화팀 비상근 기자(딴지일보에 상근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의 기사를 기고하는 사람들)들이 비영리 웹진 www.0jin0.com을 12월 3일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매체들의 영화비평이 곧 수익과 직결되는 현재의 시장환경에서 10여명의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만든 웹진입니다. 그 누구의 협찬도 없이,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가 알아서 만든거라 조금 어설프고 설렁설렁 할 수 있겠습니다만 다들 없는 시간 쪼개가며 월요일마다 모여 편집회의 하고 격렬하게 토론해가며 만든 웹진이기에 우리 영진공 일동은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영화는 감동을 팔아먹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사람을 이야기해 감동을 팔아먹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무엇보다 영화의 평가는 주관적이고 이기적일지언정 악의와 자본의 검은 손에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진공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잘될까요? 잘 되야 될텐데....

아자~! WWW.0JIN0.COM 놀러오세요!!!


PS : 지금 들어오셔도 창간 준비호를 보실 수 있습니당

하나 더! 혹시 테터에서 주소 링크를 거는 방법 아시는 분 있으면 코멘트 부탁드리겠습니다.




ㅋㅋ 배너 따다 붙였습니다.
Posted by titop
TAG 영진공

그러니까 25년이나 지난 오래된 이야기다.
나는 일곱살이었고 은퇴하신 할머니는 할 일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세 번째 사업 실패를 준비 중이었고 어머니는 아파트 상가에 아동복 점포를 알아보러 분주하였으며 밤이면 두분의 싸움이 잦았다.
낮은 길었다. 7살의 낮은 하루의 전부였으며 시간은 사각사각 지나갔다. 7살 세상은 홍옥 같이 사각사각했다. 어른들이야 어쩌건....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손수 손주의 양말의 벗겨주시며 손을 씻으라 하셨고 얼굴을 씻으라 하셨으며 그 물을 버리지 않고 내 발을 손수 씻겨주시는데 쓰셨다. 뽀득뽀득 꼭 발은 닦아 주셨다. 난 발정도는 씻을 수 있는 7살이었다.

발을 누가 씻겨주는 것. 참 기분좋은 일임을 그 때 알았다.
내가 교회를 가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즈음이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나즈막히...
"예수님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셨단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교회를 그만두게 된 건 누구의 발을 닦아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보다 최하 3개국어 방언 실력에 두둑한 염봇돈을 내며 기도할 때마다 울부짓고 고함을 질러야 3개월 속성 회개 2급 자격증을 따는 이 땅 교회들의 웃기면서 기막한 포퍼먼스 를 본 뒤다.

사랑은 요란하지 않고, 아픔은 눈물에 있지 않고, 진실은 열띠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허진호는 멋진 감독이다. 요란한 세상에 요란하지 않은 이야기를 제대로 쓴 사람은 허진호가 처음이었다.

"철구"가 정원의 "주정"을 말없이 받아주는 요란하지 않은 사랑, 다림이 일없이 사진관에서 자고 가는 것을 봐야만 하는 정원의 아픈 웃음, 정원이 아버지에게 리모콘 사용법을 몇 번이나 가르쳐야 하는지 역정 낼 때 나오는 죽음에 대한 사실, 혹은 진실.

사랑이 뒤돌아가는 사람의 숨죽인 호흡에 있다는 것, 아픔이 억눌러 참아가는 사람의 어깨 들썩임에 있다는 것, 진실은 그리 거창한게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 소소하다는 것. 난 참 크고, 빠르고, 우렁차고, 요란한 것에만 집착하고 즐겼지.

류장하의 『꽃피는 봄이 오면』을 기대한 건 그 허진호의 조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수연"을 떠나보내야 하는 "현우"는 도계초등학교 음악교사로 떠난다. '탄'밥을 먹어가며 살아온 관악부 아이들에게 음악은 꿈이자 오락이지만 "현우"에게 음악은 비루한 삶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자 끝내 잡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아이들과 "현우"의 대립은 그 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좋은 설정에서 시작한 영화가 육수에 물탄듯, 콜라 김 빠지듯 하기 시작하는 건 류장하 감독의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런닝타임이 빠듯했기 때문일까?

"연희"와 "현우"의 말랑말랑한 관계는 니맛도 내맛도 없이 흐지부지
"수연'의 결혼과 "현우"의 괴로움은 끝에가선 아무일도 없다는 듯 대사 한마디로 흐리멍텅
"재일"과 재일 할머니의 사랑은 소소한 할머니의 사랑 하나 없이 민숭맨숭
관악부 아이들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얼렁설렁


소소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감독이 알았지만
왜 소소한 이야기 속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매듭이 어떻하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왜 몰랐을까? 결국 어떤 플롯의 영화든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이야기가 열린 이유에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에 반해 연기자들의 절륜의 연기는 감동적이었다.

깐깐한 엄마 역으로 나온 윤여정의 툴툴 털어내는 대사는 장삼이사의 옆집 엄마들 푸념처럼 정겨웠고(그녀를 누가 화녀(1971년작)에서 분한 팜므파탈이라고 연상하겠는가?), 특히 김영옥의 말한마디 없이 수수한 할머니 눈빛은 절절한 이시대를 부대껴온 할머니의 다름 아니다(이 또한 누가 그녀를 보고 마징가 쇠돌이역의 성우라고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최민식, 이제는 절정인 듯한 폣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이 얼기설기한 그물같은 시나리오에 마지막 끈으로 역할을 다 한다.

할머니는 14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는 아직 그 발가락 사이에 뽀드득하던 할머니의 늙고 가는 손가락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 분의 사랑하는 방식은 이리도 소소하셨다. 사람들은 아직도 큰 소리로 싸우고, 왁자지껄하게 사랑하고, 미친년 널 뛰듯이 요란하게 슬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꼭 적이된 그녀를 총구 앞에 두고 마지못해 죽여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꽃피는 봄이 오면』은 아쉽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영화가 된다. 아직 세상이 이 영화가 필요할 만큼 충분히 지랄중이다.




ㅠ.,ㅠ 이 그림은 무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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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
일단, "모건 스퍼록"의 여자친구 "알렉산드라 제미슨"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십몇일째 맥도날드 다이어트를 하면서 섹스 트러블이 생긴다며 불평했을 때 난 엄청나게 슬펐다. 그녀는 딱 내 이상형이 아닌가?


OTL ㅠ,.ㅠ;;;;



'한달간 김치찌게와 밥만 먹을 때에도 우리 몸의 염분농도는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다. 골고루 먹지 않는 음식이야말로 최대의 독약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보호막으로 삼고 하루 한갑의 거북선과 반통의 하루방(국내산 파이프 담배)을 피워대시던 할아버님이 82세까지 사셨던 사실을 상기하며, 마지막으로 마라톤 연습을 하시던 중 돌아가신 막내 사촌형님에 대한 사망원인을 "결국 우리 유전자는 운동을 하면 안돼....더군다나 조선일보 기자였으니 우리 유전자에서는 조선일보와 운동은 극약이야"라는 말도 안되는 유권해석으로 얼버무린 희대의 자기몸 사기꾼 나의 관람전 마음가짐은 저토록 장황했다.

요컨대 나는 일주일에 3회 이상을 삼겹살+소주(2~3병)로 마시며 2회 이상을 집에서 소주(1~2병)+(골뱅이, 참치, 꽁치찌게 등)을 마시며 1주에 1회 이상 기타주류(맥주, 양주, 막걸리, 와인)로 소화해대니 나의 편협한 식습관은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어간 상태였다. (내가 저 다큐의 주연이었다면 산송상 취급받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일주일에 6회 이상의 음주 습관을 가진 이땅의 수많은 샐러리맨, 학생, 백수, 자영업자를 대표해서 난 『슈퍼사이즈미』의 비판꺼리를 찾을 양으로 눈알 뒤집어가며 보고 있었더랬다.

30일간의 맥도날드 다이어트는 25파운드의 체중증가, 간경화 조짐, 간조직 손상, 동맥경화증 조짐 등의 화려한 병력 예상 증후군을 남발하며 끝났다. 역시 문제는 자본주의의 최대 관건인 이익이며 곧 돈이다.

"모건스퍼록"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폐해였다만 솔직히 그 방법은 적절하지 못했다. 기업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이익을 위해선 로비스트가 있어야 하며 로비스트는 구축된 막강한 자금력으로 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이익의 수혜자인 서민은 동시에 이익의 희생자이며 소수의 자본권력의 배는 서민의 늘어나는 뱃살만큼이나 급격하게 늘어날 뿐이다. "모건 스퍼록"은 이 이야기를 자기희생을 통해 풀어나가지만 이는 또다른 '희생제의'에 다름 아니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도 한식품의 편중된 섭취는 불가결하게 신체의 이상증후를 나타낼 것이며 그것은 아침점심저녁으로 산삼만 쳐먹어도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일 것 아닌가? 고로, 난 감독의 『슈퍼사이즈미』프로젝트가 사회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시선을 잡으며 희생제의의 어린양이 되는 아픔을 감수한 것에 박수를 보내지만 자본주의가 서민을 제압하는 악순환의 방식을 고발하는 측면에서는 좀 비겁한 방법이었다고 말하겠다.

끝이냐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영화를 지지하겠다. 굳이 함무라비 법전까지는 안가더라도 자본의 저열한 속성을 조금 비겁한 방법으로 약올렸다고 해서 『슈퍼사이즈미』가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설사 그 방법이 조금 비겁했다고 하더라도 이정도의 각성을 깨워주는 영화를 만든 "모건 스퍼록"에 졸라 감사하는 바다.



184cm에 96kg을 들락거리는 내 몸아. 졸라 미안하다.
형이 다음부터는 10kg 뺀다.
맨날 한강 굴레방다리 왕복이다.
우린 8kg, 9kg 이런거 없다. 그냥 10kg다.
아님 존내 맞는거다.
다 형이 사랑해서 그런거니까 넌 일단 존내 맞고 시작해야 겠구나.


마지막 사족......이 영화 오늘 모든 영화관에서 간판 내려갑니다.
Posted by titop

코미디 영화가 웃기면 그만인 것이다.
좀처럼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에어플레인, 폴리스 아카데미, 총알탄 사나이, 덤앤더머의 슬랩스틱 개그는 심상의 복잡한 광경을 제로베이스로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감이다. 최근에는 우울할때면 찾아보는게 러브액츄얼리(최근 15번 정도 봤으니 요즘 꽤나 우울한가보다)로 바뀌었으나 그 전에는 단연 총알탄 사나이와 에어플레인이 톱랭크 되어 있었다.

슬랩스틱. 우리나라에서는 슬랩스틱=저질=심형래=(나아가서는)영구 시리즈의 이상한 공식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웃긴걸 어쩌라구? 웃긴게 죄야? 넘어지는게 유치해?

늘상 코미디를 영화의 하위분류가 아닌 저질의 하위분류로 놓고 이야기하는 몇몇 지인들의 머리통을 캔뚜껑으로 따주고 싶을 때 나는 또 우울해진다. 도대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편가르는 의도가 궁금하거니와 그런 계급인식을 담보로 어떻게 씨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지도 웃기다. 문화의 계급성을 구분하는 자는 분명히 부하직원을 갈구는 자이다. 고로 코미디를 사랑한다고 모두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자는 모두 코미디를 사랑한다! (역시 '안믿으면 말구'투 대사다.)


『피구의제왕』은 빈스 본과 벤 스틸러가 대립하는 영화다. 하나는 가난하고 하나는 부자이나 둘다 갑남을녀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전문용어로 "쪼다"에 속하는 인물들... 피터(빈스 본)는 5만달러를 벌기 위해 피구시합에 얼떨결에 나가게 되고 특별한 플롯없이 우승한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쟁쟁한 팀들과의 피튀기는 대결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냥 이긴다. 이 허망하고 진부한 내용은 다시 곱씹어 보면 미치도록 웃긴 설정이다. 저 소림축구에서 봤던 마지막 시합의 비장감 따위조차 웃음의 방해요소라면 그냥 무시해버리는 내공. 그것은 영화내에서 나오는 그 어떠한 장치(예를 들자면 밴스틸러 사타구니에 들어있는 뽕빤쓰, 중간중간 까메오로 등장하는 데이빗 핫셀호프, 심판장인 척노리스, 랜스 암스트롱의 깜짝출연, 피터 관원들의 쪼다행각)들은 그저 들러리 웃음 뿐이다. 그렇다고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죽어 있느냐? 절대 아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그는 내 정신세계 수준에서 개그의 절대치를 보여주게 웃기다.

어쨌든, 뭣이 됐든....

이 영화.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사족. 관람제외대상 공고
(이 글로 인해 몇몇 분은 현혹될 수 있으니...)

1. 개그콘서트, 웃찾사 시청 불가능자 관람금지
2. 학계, 재계, 정계 고위공직자 관람금지
3. 심형래의 개그코드 이해불가능자 관람금지

관람 추천 대상
1. 용가리도 심형래 개그의 연장이다 (필관람)
2. 주커형제 신봉자 (필관람)
3. 전영공작소 신봉자 (필관람)
Posted by titop
스포일러 듬뿍!!!!!!(영화보실뿐은 일독 금지)

뒤돌아 생각해보면 인생의 고비고비 갈림길마다 어디 한 곳 디뎌 똥물 아닌데가 없었을까? 맞다. 절절한 똥물에 우린 늘 좀 더 나은곳을 바라보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도전하면서 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박민규가 절규했던 "프로"의 도전정신으로 발버둥을 쳐 대고 있었다. 아뿔사, 저런, 니미, 조또, 씨발, 젠장, 우라질 따위의 조건부 감탄사를 연발하며(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거의확정적조건부 감탄사) 인생의 갈림길에 대한 후회를 해내고야 말지 않았던가? 우리의 근엄한 대한교과서, 지령1호는 바둑아 놀자, 영희야 놀자 였건만 이 땅 어디에 한뛔기 놀만한 땅 한번 있던적 있더냐?



[1]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자본주의의 노동갈취 공식인 프랜차이즈를 벗어나는 방법은 안싸우는 것이듯 『나비효과』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안후회 하는 것이었다.

[2]
극장판대신 디렉터스컷 디비디 리핑을 받아본 바로는 이 영화가 왜 혹평 일색이었는지 대충 눈치 깔 수 있었다.

영화의 한줄 요약은 이렇다.
"씨바, 암만 발버둥 쳐봐야 지금 최악이라고 느낀 상황이 최선이다"

아, 씨바 얼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후달리는 소리더냔 말이다.

에반은 과거의 상처에 고통받는 캐릭터다. 그는 어린시절 성추행을 당했으며 폭탄으로 살인(미필적 고의)도 저질렀고, 폭행, 흡연은 물론 살인의 충격으로 인한 친구를 정신이상으로 몰고가게 한 주인공이다.

두둥~ (이건 에반의 극도로 불안한 과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온 ME로 이해해 주시면 된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후회를 하나씩 되돌려 놓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더욱 비참해지는 과거이며 그 과거를 또다시 돌려놓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은 에반을 더욱 깊숙한 파멸로 몰고갈 뿐이다. (극장판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한다만 디렉터스 컷에서는 자궁속으로 들어간 에반이 탯줄로 목을 감아 자살함으로써 뱃속에서 유산되는 걸로 끝난다.)

[3]
노력과 경쟁만을 강요하는 세상.
대립과 제로섬게임에 익숙해진 자본주의의 속성은 이땅의 피지배계급에게 '로또도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황망한 환상만 마약처럼 공급하는 중이다. 박민규는 차라리 버리면서 사는게 자본주의를 이기는 길이라고 이야기 했고 나비효과는 아무리 후회해봐야 지금 이상은 없다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유려하게 곱씹어 낸다.

결국, 우리는 지금은 만족하던가, 지금을 내던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니미~(이건 임계점을 목전에 둔 사회에 대한 비아냥조의 후렴구로 이해해 주시라)

이런 후달리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후벼내는 영화에 미국 평단의 혹평은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쓰레기, 과다한 폭력, 변덕스러운 각본, 코메디 쯤으로 치부하기엔 씨발, 영화가 너무 좋다.

[4]
문제는 아직 살아내야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있어야 하느냐다.
Posted by titop

비포선라이즈가 보여준 '낮선여자 원나잇 스탠드 공략집'은 9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떡진머리에 정체불분명한 지역정서란 핸디캡을 와꾸만으로 몸빵하는 수준의 외모라는 걸림돌이 있긴 하다만...

비포선셋이 나온 이후, 9년전 비포선라이즈의 이상포장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원래 느끼해서 안봤었네, 시간이 없었네, 유치한 사랑싸움에 낄 수준이 아니었네 등등등.... 블코나 테터툴즈에 포스팅되는 글들은 거의 과거에는 어땠네~식의 회상조를 (엄밀하게 얘기해서 과거형 어미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후렴구로 차용하는 법률이라도 새웠나보다.

사실, 비포선라이즈의 가장 큰 공감은 제시의 작업롤에서 기인한다. 셀린느에게 첫작업구라를 떠올려보라! 앞자리 싸우는 부부에 심란해하는 셀린느와 공통의 정서를 부추기며 자연스레 식당칸으로 이동시키는 능력은 수준급이다. 셀린느를 빈에 내리게 만드는 절묘한 시간차 공략도 여자없는 불행한 솔로들에겐 줄치고(아니, 반복재생으로) 보아야할 스킬중 하나다. 뿐이랴, 열몇시간 이내에 셀린느와의 로맨스를 만드려는 제시의 가공한 전술들은 잠언수준의 뻐꾸기 어록을 만들어내며 런닝타임 내내 밑줄긋게 만들지 않던가?

고로, 비포선라이즈를 과거에 어땠네 식으로 폄훼하는 작금의 포스팅에 분노를 표하는 바다. 아직 산날 보다는 살날이 많을 터이고 사랑한 날보다는 사랑할 날이 많을 터이고 인생은 꾸준히 미완성일터.

원나잇 스탠드 테크니컬 바이블인 비포선라이즈가 왜 얄팍한 과거로의 재귀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어야 하느냔 말이다. 요컨대 두꺼비집 놀이 하는데 포크레인 동원한 꼴이 아닐 수 없다.

9년의 세월은 비포선셋을 선물했다.
구질구질한 인생을 숨기고 사는 뉴요커들의 "구뤠이~ㅅ"으로 시작되는 답변인사처럼 제시나, 셀린느 모두 인생의 비루함을 솔직히 얘기하지 못한다. 맞아, 스무살에 맞는 작업스킬이 있고 서른두살에 맞는 작업스킬이 있는 것 아닌가? 서른두살에 맞는 작업스킬은 서로의 비루함을 보듬는거고 그게 인생이라며 툭, 털듯 내뱉는거고 그런거지.

9년전 비엔나의 한 골목에서 셀린느가 언제 정현종의 시를 훔쳐봤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섬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9년이 지난 해질녘에 둘은 그 섬이 코타 키나발루나 사이판의 에머랄드 빛 강렬한 태양의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비루하고 남루한 준설기로 여기저기 패인 밤섬 같은거란걸 공감해 냈다.

그리고 그 너덜너덜한 것 같은 인생은 훗날 또 아름다운 철없음이 될거고 아플거고, 슬플거고 그게 또 죽기 전에야 기억에 몇초밖에 남지 않을 서른 몇살 즈음의 기억 한토막쯤으로 남을 거다.

3줄요약
비포선라이즈는 아직도 유효한 원나잇 스탠드 테크니컬 바이블이다.
비포선셋은 9년만에 우연찮게 다시만난 그녀의 재 원나잇기다.
9년이 지나면 작업스킬도 바뀌어야 한다.

깜짝 선물 : 셀린느가 비포선셋 마지막 부분에 헛헛한 엔딩스크롤에 대한 선물처럼 제시에게 불러준 노래. 노래제목은 그냥 왈츠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지인이 설명해주셨지만 돌고래 아이큐 멤버의 수장인 나로서는 기억할리 만무하다.
Posted by titop



쉬리 이후의 한석규는 영 불편하다. 당대의 배우소리 듣던 그에게 관객의 기대감은 과거의 영광속에서 그를 옭죌 뿐이다.

올가미는 몸부림칠수록 죄어온다.

그에게서 다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각인되었고 에너지는 낭비된 감이 없지 않다. 하다못해 커피광고만 좀 줄였어도 과거의 잔상을 좀 덜 수 있을텐데... 돈이란게 그래서 무섭다.

돌아가서,

정직하지 못한 영화 외적인 문제를 하나 더 짚어보자. "주홍글씨"는 스릴러, 로맨스 영화로 강조되었다. 거기서 김 빠진다. 이 영화 치정극이다. 치정극인데 선명하게 날이 선 외형적 장치를 갖는 치정극이 아니라 인물간의 대화와 몇몇 설정만으로 또아리 틀어나가는 심리극에 가깝다. 여기서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일반 관객은 똥씹은 표정으로 변한다.

영화로 들어가서,

영화는 최초의 정보에서 정보제공자의 입장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시선(혹은 정확한 사실에 의한 시선)으로 전이 된다. 경희(성현아)가 왜 팜므파탈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성현아의 이야기는 잘못 만들어진 소설의 액자구조처럼 겉돈다. 남편과 남편의 주변부 이야기는 설득되기 전에 잊혀진다. 큰틀에서 성현아의 이야기는 겉돌고 기훈(한석규)의 역할은 영화의 큰 흐름과 별 관계 없다(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성현아와의 치정극이 얽히길 바랬던 관객들은 헛헛한 결과에 뜨악한다.

내용면에서(스포일러 있음. 경악스러울 정도니 보실분은 스톱),

꼭 봐야겠다면 누질르시라..



전체적으로 한석규를 규정하는 몇몇의 필모그라피와 CM(난 이게 한석규를 옭아매는 가장 큰 약점이라고 본다. 우리가 아직도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를 가정하고 영화를 보는건 영화의 잘된탓도 있지만 그 이미지를 차용해 끊임없이 커피를 사라고 주문한 CM탓이 더 크다.)은 그의 운신의 폭을 사정없이 좁혀놓았다. 그의 연기력을 왈가왈부하며 잘했네 못했네를 이야기하는건 의미 없다. 이미 우리 머리속에 구축된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그의 연기력을 판단할만한 객관적인 잣대를 잃어버렸다.

이은주와 엄지원, 발성불량의 이 두 쌍두마차는 대본 안에서 대본 밖을 넘지 않는 수준의 연기를 해줬다. (자 둘다 이쁘니까 별세개)

성현아, 이 캐릭터 캐스팅 승락한 매니저가 나쁜 새끼다.

우린 감독의 고민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단지 감독의 고민에 동의하면 관람으로써 그 동의의 표시를 할 뿐이다. 개인적인 고민의 소구대상을 비겁한 홍보로써 관람객에게 강제하는 것. 이거 나쁜 일이다. 하물며 영화란 매체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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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류배리모어)는 좋겠다.
그녀는 매일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행복한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이므로...(첫키스만 50번째)
또, 수진(손예진)은 어떤가? 인생의 3대불치병이라 일컷는 무좀, 변비, 치질의 3대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지 않는가? 지루해질만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잊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축복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그럼....난...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있지...씨바.....바로 밑에....(사진은 펌)







가을은 역시 쏘주의 계절이고 그래서 내 엠에센 아이디는 얼마전부터 "Would you like a glass of soju? It's fool"이다. Glass는 역시 남자의 로망이 식지 않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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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모자를 눌러 쓴 아버지는 좀 열정적이었다.
적기의 야간폭격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이었다. 빛은 절대 새어나가선 안됐다. 적기는 그 불빛을 타겟삼아 폭탄을 투하할 것이고 아버지는 안방 커튼이 제대로 안쳐져 있다고 문밖에서 안달이셨다. 이듬해 봄은 어수선했다. 광주에선 빨갱이들이 도시를 뒤숭숭하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재운 후에야 마루에서 혹은 안방에서 두런두런 거렸다. 마루에서 작은방으로 새어나오는 불빛 때문에 새벽녘 요의를 참느라 난 두 번이나 8살을 먹고도 오줌싸개라는 오명을 얻을 뻔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두런두런한 밤에는 내가 잠을 깨서는 안될 지령을 받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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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육관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허겁지겁 당선되었지만 누구도 쉬쉬할 뿐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택시 기사는 친정으로 가는 우리 어머니께 “박정희가 그나마 우릴 먹고살게 해줬는데 같은 육사인 전두환이도 그만큼은 하지 않겠냐”며 어찌되었든 먹고 사는게 제일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네가 네 죄를 알렸다!”풍의 반공포스터 그리기를 웅변대회와 함께 했으며 어느누구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빼놓고 웅변연설문을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북한어린이들 보여주는 기도 안차는 과장된 몸짓의 무용이나 노래는 우리의 반공웅변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훗날 군대 호국장병 웅변대회에 같이 참가했던 4개월 고참 김다두 일병은 전라도지역 웅변대회에서 연설도중 단상을 앞발 내려찍기로 찍어가며 웅변을 한 덕분에 3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호국장병 웅변대회에서 난 2위를 해 3박4일 휴가를 얻었다. 복귀하던 저녁 나는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된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탈영을 생각하기도 했다.

먹고 사는 건 우주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먹고 살라고만 하다보니 우린 너무 많은걸 유린한 뒤였고 먹고 사는 게 진짜 먹고 사는 게 아니란 걸 우린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가브리엘 살바토레가 그려낸 조그마한 농촌마을의 섬뜩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지금은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정의를 죽이고, 순수를 죽이고, 올바름을 죽이고, 영혼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미카엘처럼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 쳤다던 아버지의 총탄에 쓰러질지도 모르며 우리가 염원하는 먹고 살겠다는 건 재너머 밥짓는 냄새 쯤 처럼 아련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Posted by titop

성룡은 추석의 키워드였다.
설날처럼 세뱃돈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성룡이 있었기에 만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진짜 아파하고 진짜 웃기고 진짜 멋지고 진짜 날라다녔던 성룡이었다. 요컨대 13살의 입에서 나온 '진짜'는 최상급 형용사였고 성룡의 연기는 여타 다른 잡다한 형용사 따위가 나불거릴 수 없는 영역에 속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헐리웃은 턱시도, 80일간의 세계일주, 메달리온을 통해 우리에게서 성룡을 앗아갔다. 우리가 원하던 성룡은 거기 없었다. 성룡은 장끌로드 반담이나 아놀드슈왈츠네거가 아니었음에도 헐리웃은 성룡이라는 전무후무할 재료를 CG와 아크로바트를 통해 망쳐버렸다. 참, 깔끔하게도 말아먹었다.

이젠 더이상 성룡을 기대하지도 않고 추석을 지낸다. 그냥, 돈 버는 자 티 내느라고 선물 사고 그냥, 먹고 사는거 추하게 안보일라고 인사하러 다니고 그런다. 사이사이 추석 특별영화 틈바구니에 성룡이 간간히 보이지만 고스톱 판뒤에서 무성의하게 들리는 포커스 아웃된 외경일 뿐이다.

중국반환 이후 홍콩은 성룡에게 미안했을 거다. 성룡은 헐리웃에서 일군 자신의 성공이 반만 원조팬(사실 그야말로 이소룡이후의 범 아시아 스타 아닌가?)을 위했다는 것에 미안했을 거다. 자신을 키운 홍콩에 어쨌건 원죄처럼 미안한건 오래 남아 있을거다. 성룡 착하잖냐.

뉴폴리스스토리의 진국영은 마치 홍콩에게 미안했던 성룡의 페르소나 같다. 1985년부터 시작된 폴리스스토리의 미학인 아니 성룡이 지금까지 성장한 원동력이었던 건강하고 육체적인 웃음이 사라졌다. 비통하고 슬프기만한 이 이야기는 중안조 때보다 원숙하고 늙은 성룡의 비애가 더 짙다.

그러나,
너무나도 슬프게도
이 영화는 신파의 굴레를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
철없는 10대들의 우발적인 범행, 그리고 게임을 하듯 벌이는 범행의 동기는 김형곤 유행어처럼 화면이 나가기도 전에 입속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김학래가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거리자마자 양종철이 일어나 "밥먹고 합시다"를 외치는 순간 회장이 일어나며 "이러니 잘 될 턱이 없지"하면서 "그나저나 잘 되야 할텐데~"를 외치던 대사의 8할이 유행어로 채워진 회장님회장님 우리회장님이 이런식으로 오마쥬 될 수도 있다니.... (나는 안봐도 비디오 수준의 줄거리를 갖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착한 성룡을 봐서 이렇게 둘러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나이를 먹은 성룡은 이제 그 화려했던 몸놀림과 재기가 짐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아직도 스턴트와 아크로바트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성룡이 풀어내야 할 숙제이긴 하다.

우리도 성룡을 액션배우가 아닌 나이를 젊잖게 먹은 또다른 성룡으로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좀 쿨하게 그가 젊잖고 멋진 또다른 역으로 변신해 보는 걸 기다리는 거 말이다.

그는 20여년의 추석을 즐겁게 해준 공로도 있잖냐.
Posted by ti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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